『사랑의 파괴』 — 사랑의 등가교환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십수년전 고등학생이던 시절 인터넷에서 접한 어느 웹툰이었다.
해당 웹툰(스크롤 압박 주의)






꽤 짧지 않은 분량의 이 만화에서 내가 느낀 점은 인간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책이 가져다준 교훈이 무색하게도 어린 나는 내가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만큼 사랑 받기를 원했다.
결국 그 사랑은 뼈아픈 기억으로 남아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이 되었다.
우리는 가치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다
정량적인 것은 수치로 표현 가능하므로 가치 평가에서 자유롭다. 친구에게 5만원을 빌렸으면 동일한 금액을 갚으면 되고, 누군가가 밥을 사줬으면 그에 준하거나 더 나은 식사를 대접하면 될 일이다.(상대방의 마음은 계산에서 배제하도록 하자)
정성적인 것은 궤가 다르다. 친구와의 우정을 금액으로 따질 수 있는가? 부모님의 사랑은? 그 어떤 것도 값어치를 매길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전달받은 감정적인 부분으로 그것을 평가한다. 물질적인 것이 함께 오고갈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성적인 부분과 비례한다고 볼 수는 없다.
타인의 마음이 어떠한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끝없이 알고 싶어하고 그 욕심이 우리를 가치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기브앤테이크
어릴 때 어른들이 가르쳐주었든 나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알게되었든 기브앤테이크라는 것은 일종의 인간 관계에서 존재하는 상도에 가깝다. 안타까운 점은 그것은 마땅히 지켜야할 또는 지키면 좋을 도덕이지 반드시 지켜야할 법이 아니란 점이고 기준이 모두에게 다 다르단 것이다.
그런 도덕적 기준을 잣대로 들이밀기 이전에 기브앤테이크가 완벽하려면 거래 대상이 정량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그러한 의미에서 정성적인 것을 기브앤테이크로 평가하려 한다던가, 그것을 원하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볼 수 있다. (이것은 지극히 글쓴이의 의견이다.)
나의 마음의 크기는 이 정도인데 상대방이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어느 정도일까를 가늠하는 순간부터 관계의 지옥이 시작된다. 같은 질량을 가진 마음을 시소에 올려두면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지 않고 수평을 유지할텐데 정말 우린 그런 평행선을 바래왔던걸까?
사랑의 등가교환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마음들에게서 기브앤테이크를 찾고 바랬던가. 관계의 동등함을 원하든 치기 어린 마음에서 오는 투정 같은 사랑 받고싶다는 감정이든 뭐든 좋다. 모두가 그런 시절이 있지 않겠는가.
인간은 사랑하는만큼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현생 인류가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기 전까진 불가능하다고 본다. 난 16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 그땐 사랑을 몰라서 사랑의 등가교환이 중요했는데 이젠 그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안다.
이젠 관계의 평행선을 추구하지 않는다. 감정은 뷸균형할 수 밖에 없다. 시소가 오르내리지 않으면 시소가 아니지 않나. 나의 눈에 상대가 담기고, 상대의 눈에 내가 담기면 그 뿐이다. 시작은 알아도 끝은 모르듯 관계가 어디로 흘러가든 나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