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 위드 와이』 — 왜라는 질문 앞에서

선택의 배경엔 언제나 WHY가 있다
지난 회사는 초기 스타트업이었다. 내가 합류했을 땐 출시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제품이 있었고 제품 자체의 완성도는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 터였다. 여느 제품이 그러하듯 그것은 무수한 버그들과 기능적 부족함을 안은 채 출시되었고 직원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얼추 해결되어 제품의 동작 자체엔 크리티컬한 문제는 없는 상태에서 나는 그 제품을 다루게 된 것이다.
동종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제품을 판매하는 그 회사는 안타깝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단계에 맞게 PMF(Product Market Fit)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 제품은 이름만 들어도 다들 아는 대기업을 포함하여 많은 기업에게 서빙되고 있었지만 리텐션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어렵고 도전적인 환경에서 제품을 고도화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 회사를 택한 이유는 유니크한 제품을 만들고 있어서도 아니었고 아주 큰 투자금을 받아서도 아니었다. 회사가 가진 WHY가 분명했기 때문이고 그것이 흥미로웠고 재밌게 일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WHY가 중요한 이유
사람마다 옷에 취향이 있지 않은가. 누구는 미니멀한 옷을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스포티한 옷을 좋아할 수도 있다. 본인이 고집하는 라이프스타일이 패션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고 그 가치관에 맞는 스타일을 전개하는 브랜드의 옷을 선택하여 구매하곤 한다.
WHY가 분명한 제품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를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된다. (p.101)
그러나 이 때까지 미니멀을 전개하던 브랜드가 갑자기 다른 방향과 컨셉을 잡고 스포티한 무드의 옷를 내놓으면 어떨까? 옷이야 예쁘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옷을 사입겠지만 브랜드의 철학과 아이덴티티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은 그런 노선 변경에 실망할 확률이 높다. 패션업계는 트렌드에 민감한 편인데 단순히 유행하는 무드나 컬러의 제품(WHAT)에만 집중하여 본질적인 가치(WHY)를 놓친다면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 해당 시즌을 그르치게 될 수도 있다.
그 현상이 특정 시즌에만 벌어진다면 다행이겠지만 매력도가 떨어져 사람들이 점차 찾지 않는다면 해당 브랜드는 쇠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놓쳤을까
다시 회사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앱의 리텐션이 갈수록 우하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고객사 타입 별로 리텐션을 재정의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기능들을 추가하고 바이럴 이벤트도 구현했다. 결과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최초 일정 기간 동안엔 리텐션도 오르고 결과가 소폭 좋아졌으나 시간이 지나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왜 그런 결과를 맞이했을까? 무엇보다 우리 서비스는 B2B향 복지 제품으로 각 고객은 열렬한 팬이 아니라 회사 복지를 통해 고객이 된 케이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들의 온도가 높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펼친 전략은 위협이나 회유, 그리고 보상에 기대는 단순한 방식이었다. 그것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고객들에게 WHY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책에서 저자가 언급하는 이른바 ‘조종 전략’을 펼친 셈이었다. 그리고 복지의 일환으로 제공된 서비스기에 가볍게 사용을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고객마다 서비스의 의미는 다 달랐고 이는 우리가 적절한 전략을 찾는 것을 힘들게 했다.
고객이 우리의 신념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붙잡은 것이 데이터였다. 지표를 통해서 유저들을 분석했고 그것들로 사람들의 발길을 돌리려 했다.
서로를 이해시키지 못할 때 시작되는 것이 바로 ‘조종의 게임’이다. (p.181)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데이터에 집착한 나머지 WHY를 잊고 HOW와 WHAT에만 집중한 것이다. 물론 WHY에 집중한다고 해서 당장 어떤 기능을 만들어야 했는지 명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은 달라졌을 것이다. 가슴에 와닿는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단 점에서 쓰라린 실패감을 느꼈다.
응집력 있는 조직 만들기
책에서는 줄곧 여러 회사의 예시가 나오지만 단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예였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창업자 허브 켈러허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직원이 첫 번째이고 고객은 그 다음이다.(Employees First, Customers Second)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찾아보니 직원을 고객보다 우선시 하는 철학으로 유명하다고 하며, 직원과 고객의 분쟁이 생기면 최고의 법무팀을 동원하여 직원을 보호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직원이 행복하고 만족하는 회사가 당연히 고객에게도 잘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구성원이 소속감을 느낄 때, 성공 가능성은 눈에 띄게 높아진다.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은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헌신한다. (p.145)
회사의 비전과 역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철학은 대개 비이성적이거나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그럴듯한 단어와 설명을 붙여서 의미부여를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골든서클의 안(WHY)에서 밖(WHAT)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이며, 같은 신념을 공유해야한다는 점이다.
위대한 리더는 직감을 믿는다. 과학보다 예술을 먼저 이해하고 지성보다 감성을 먼저 움직인다. 구성원들에게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위대한 조직은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는 조직문화에서 나오며 강한 조직문화는 소속감을 만든다. 구성원들은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며 소속감이 심리적 안전망이 되어준다.
그런 맥락에서 리더십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다음 스텝을 위해 여러 포지션을 둘러보고 있는데, 나의 연차에 맞는 포지션은 리더십을 요구하거나 그에 준하는 경험을 우대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방향을 고민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일을 왜 하는가, 왜 이 회사를 선택했고 우리는 왜 여기 모여있는가.
조직이 WHY로 응집된다면, 리더의 역할은 그 WHY를 잃지 않도록 상기시키는 것이겠다. 동료들의 내면에 있는 질문들을 꺼내고 그것을 조직의 WHY와 연결해주는 사람, 저자는 나의 리더십에 대한 고민 중 일부를 해결해줬다.
일터를 넘어 나의 삶으로
WHY는 새롭게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다. (p.316)
WHY라는 것은 이미 세상에 있다. 어떤 철학으로 어떤 가치관을 추구할 것인지는 개인에게 달려있다. 삶은 이러한 것을 발견하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우리는 일생의 3분의 1 정도를 일터에서 보낸다. 나머지 3분의 1을 잠으로 채운다고 하면 오로지 개인의 몫으로 남은 것은 3분의 1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WHY가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삶을 대해야 하는가? 그것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일터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삶의 대부분은 선택의 연속이다. 일터에서의 결정이든, 개인적인 관계이든, 하루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그렇기에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어떤 일을 하든 출발점은 나 자신이다. 스스로의 가치와 관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선택은 상황에 끌려가기 쉽다.
헨리 포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관점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방향을 정하는 힘이라는 뜻으로 보여진다.
나 역시 일을 하며 비슷한 경험을 했다. 어떤 관점을 임하느냐에 따라 내가 보게 되는 가능성도, 만들어내는 결과도 달라졌다. 결국 갖고 있는 철학이 삶의 태도로 이어지고, 그 태도가 다시 나의 선택을 만든다.
내게 남은 과제는 완벽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나의 기준을 돌아보는 일이겠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붙잡고 싶은 삶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