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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은 나의 2024년 회고

· 약 13분
Park YoungHo
재밌게 살고 싶은 인간, 즐겁게 개발하고 싶은 개발자.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있다.
시간에는 가속도의 법칙이 있다고,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흘러갈거라고.
지금 너네가 교실에 하루종일 앉아있는게 정말 지겹도록 시간이 안가겠지만 나중엔 정말 빨리 가게 될거라고.

그리고 20대 후반부터 나는 그것들을 점점 더 실감하게 되었고
작년은 그것을 정말 크게 느낀 해였다. 어찌 보냈는지 모를 정도로 2024년은, 나의 서른둘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1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미 이 때는 전 직장에서의 희망퇴직이 확정되어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출근에 임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회사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마냥 침울하다거나 안 좋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뭐랄까 오히려 퇴사를 앞둔, 휴식이든 이직이든 새로운 환경을 목전에 둔 동료들의 설렘과 시끌벅적함이 느껴졌고
그간 바빠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안부도 묻지 못했던 이들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나 할까.

다시 생각해도 함께한 동료들이 참 좋은 회사였다. 나는 그제서야 좋은 동료들이 최고의 복지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의 나는 사내 광고 SSP 구축 작업을 완료했었고 나의 마지막 작품인 주문서 인쇄 전용 페이지 서포트 기능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가 맡은 피쳐들 하나하나 다 애정이 있지만 나의 유작? 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유독 신경이 쓰였다.

2월

2월 1일 부로 퇴사를 하게 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일단은 쉬고 싶었고 여행도 가고 싶었다. 3월에 여행을 가기로 마음 먹었고 부다페스트행 항공권을 끊었다.

그 외엔 2월엔 계획이란 것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3년 근속하여 내 명의로 이관된 맥북을 팔았다. 싸이클 수가 워낙 높았고 인텔 맥북이라 조금이라도 무거운 빌드를 하게 되면 비행기가 이륙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열을 내뿜어서 적당히 저렴한 값에 빠르게 처분했다.

그리고 그 금액을 보태서 지금 쓰고 있는 M3 맥북 프로 14 모델을 구매했다. 빈티지 필름 카메라도 구매했고 서울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퇴사하고 하고싶은 것만 하면서 정말 한량처럼 살았다.

3월

3월 11일 동유럽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나의 일정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 빈, 바트이슐, 할슈타트, 잘츠부르크 등을 거쳐 체코 프라하에서 끝이 나는 3주 짜리 여행이었다.

재작년에 혼자서 근속휴가와 개인휴가, 공휴일 등을 다 이어붙여 4주 동안 서유럽 4개국(🇮🇹🇪🇸🇫🇷🇵🇹)을 다녀왔는데 그 때 유럽 여행에 참 재미를 느껴서 그런지 이번에도 유럽을 택하게 되었다.

학생이나 20대 후반일 때는 돈이나 시간이 없다는 흔한 이유로 해외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사실 그건 핑계고 내가 다 그런 것들을 알아보는 게 귀찮아서가 컸던 거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참 좋아하는 편에 속하는 것 같다. 일상을 벗어난다는 설렘, 도시나 국가가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그들의 역사, 익숙치 않은 언어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바디 랭귀지 따위의 각고의 노력들 그런 것들이 다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진귀한 경험이니깐.

나는 휴양보다는 관광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행가서 쉬는 날이 없이 늘 바삐 움직이는 편이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 순 있어도 그 과정에서 겪는 경험들은 나를 좀 더 성숙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4월

긴 동유럽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말자 나는 지인들과 책 스터디를 하나 시작했다.

좋은코드나쁜코드
좋은 코드, 나쁜 코드

좋은 코드, 나쁜 코드라는 책이었고 꽤 괜찮은 책이었던걸로 기억한다. 4월 3주차까지 책을 읽기로 했고 그 뒤엔 배운 것들을 코드로 적용하는 시간을 가졌다.

함께 참여한 지인들은 다 직장인이고 스터디 룰이 딱히 존재하지 않았고 자유로웠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뭐랄까 흐지부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스터디라는 게 1~2주 잠깐 딸깍하고 말게 아니라 긴 호흡에서 가져가는 게 많을텐데 좀 더 꾸준하고 에너지 있게 스터디를 완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런건 노하우 같은 건 필요없고 해야할 게 있으면 미루지 말고 빨리빨리 해내면 되는데 보통 직장에 다니면 체력 이슈로 힘들고 이 때 나는 백수였지만 게으름 이슈로 그러지 못했다. (당장에 2주1블 글쓰기도 마지막 날에 쓰는 사람,,)

5월

퇴사한 지 3개월, 더 이상 코드를 손에서 놓으면 안되겠단 생각으로 사이드 프로젝트를 여기저기 찾다가 지인의 제안으로 공연 티켓 판매 플랫폼 불티를 만드는 팀에 참여하여 프로젝트에 기여하기 시작했다.

불티는 넥스터즈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인데 넥스터즈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꾸준히 갖고 있었지만 회사에 다닐 땐 바쁘다는 핑계로 지원할 엄두를 못 냈었는데 정작 백수가 되자 놀기 바빴던 나는 낙하산(?)을 타고 불티에 입성했다.

그 외에는 부산과 묵호 국내 여행을 떠났었다. 직장인이라면 평일엔 일을 해야겠지만 작고 사람이 없는 곳을 골라 주말 1박 2일 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6-7월

본격적으로 취업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알고리즘 문제 풀이도 시작했고 이력서도 고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꾸준히 참여했다.

그리고 이력서를 조금씩 넣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시장의 상황이 확실히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경기가 안 좋아졌고 스타트업들은 너도 나도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인력을 감축하고 BEP를 맞추거나 흑자를 내려고 하는 등 그러한 허리띠 졸라매기와 성과 증명하기는 전부터 많이 봐왔지만 상황은 내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예전에는 채용공고에서 요구하는 조건과 경험의 적정 수준을 보유했다면 서류 전형은 통과되고 코딩 테스트나 기술 면접으로 거르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해당 포지션에 정말 100% 부합하거나 정말 매력적인 지원자가 아니면 서류 전형에서도 떨어트리는 느낌이 들었다.

호황일 때는 벌크업에 몰두하기 마련이니 허들을 조금 낮춰서 많은 인력들을 확보하여 회사의 성장에 박차를 가하자는 느낌이고 지금 같은 불황일 때는 한명 한명에 드는 리소스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보니 인력을 뽑는데 더욱 신중한 것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처음엔 이 포지션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얼추 다 충족하니까 붙지 않을까? 싶은 곳들도 많이 떨어지더라. 이력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주변의 도움과 인터넷을 통해서 이력서를 많이 고쳤다. 그러니 소폭 서류 전형 합격률이 올랐으나 전반적으로 회사들이 요구하는 바가 조금 더 빡빡해진 느낌이 든다. 내가 이젠 마냥 신입이나 주니어가 아니라서 그런걸까?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분위기가 마냥 그렇다고 볼 수는 없었던 거 같다.

나의 연차가 차서든 불황이든 이래저래 좀 더 엄정한 기준과 검증으로 사람을 채용하는구나 느껴서 그에 맞게 좀 더 준비를 잘 해야했다.

8월

무더운 8월, 많은 회사들과 커피챗/면접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그러던 중 현 직장에 합류하기로 결정하고 8월 말로 입사일을 정했다.

사실 일이라는 게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전 직장에서 겪었던, 했었던 일과는 다른 일을 하고 싶었고 그런 점에서 현 회사의 도메인이나 프로덕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는 점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을 거 같다는 확신도 있었다.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는 처음인데 어떤 이름을 할지 고민을 하다가 로이라고 하기로 했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수히 많은 이름을 추천 받았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고 어쩌다보니 로이킴 노래 듣다가 로이라는 이름을 하게 되었다.

장장 7개월 가까이 되는 시간 놀았다. 전 직장에서 적지 않은 시간동안 근속했기 때문에 실업 급여가 오래 나와서 망정이지 더 오래 쉴 수도 없었고 쉬고 싶지도 않았다.

왜 어른들, 선배들이 대책 없이 퇴사하지말라고 그렇게나 강조하며 말한지 알겠더라. IT 업계가 상대적으로 이직이 흔하고 자유로운 편이지만 특별히 돈 들어올 구석이나 재주가 있는게 아니라면 정기적인 근로 소득 없이 사는 것은 굉장히 불안정하고 삶의 질을 떨어트렸다.

심지어 나는 퇴사 전에 백수 기간을 버틸 생활비로 계획해둔 금액도 있었고 실업 급여와 합치면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그랬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먹어봐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겪고 느끼니 그것엔 그만한 마땅한 이유가 있는 거였다.

9-12월

본격적으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일로서 리액트를 만지는 것은 5년만이고 리액트 네이티브는 처음이다. 프로덕트는 일반적인 웹 서비스와 다르게 하드웨어 엔진을 끼고 있어서 펌웨어를 통한 통신을 필요로 한다.

내가 직접 개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펌웨어라는 것은 말만 들어봤지 접해본 적은 없어서 익숙치 않은 면이 있다. 또한 하드웨어와 통신하기 위한 코드들을 다 까본 것은 아니지만 클래스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어서 전통적인(?) 객체지향적 사고와 접근법을 연습하고 익힐 수 있지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제대로 된 앱 개발은 대학생 때 이후로는 처음인데 모든 게 낯설고 쉽지 않다. 리액트 네이티브를 쓰더라도 네이티브 코드는 필요하며 네이티브 코드를 고칠 일은 아직까지 없긴 한데 좀 더 완성도 높은 개발을 위해서는 자바나 스위프트에 대한 기본 지식도 필요할 것 같더라.

그리고 확실히 ios와 안드로이드란 플랫폼 자체가 애플과 구글이란 기업과 엮여있다보니 자유도 면에서 웹보다 떨어진다. 그리고 앱이다보니 테스트를 위한 환경설정도 번거롭고,,, 반년 정도 지나서 어느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웹 개발보다는 녹록치 않다. 그러나 앱 개발 나름의 장점도 있고 매력도 느끼고 있다.

프론트엔드 엔지니어가 리액트 네이티브를 만지는 게 자칫 잘못하면 커리어 무덤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는데 다 하기 나름인거 같다. 앱 개발만 계속 하는 것도 아니니 너무 염려하지는 않는다. 어느하나 소홀하면 안되겠다는 생각 뿐인데 이 때까지 게으르게 산 만큼 부지런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끝내며

다사다난했던 2024년이 지나갔고 2025년도 1월이 다 지나갔다. 연차가 적지않게 찼지만 개발자로서 나는 성장이 조금 정체되어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여러가지 공부와 이런저런 시도들을 계획 안에 두고 있다.

부디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그만큼 초심으로 열심히 살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또 블로그 글들로 찾아와야겠다.